소개글

 

설립 배경

 

본 사이트의 기획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고 비(B)파운데이션이 운영한 〈미술 아키비스트 양성 교육 프로그램〉(2025.09.12.~2025.10.25.)을 참관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기록학 개론과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사례, 엑셀을 활용한 자료 목록화 및 분류체계 설정, 디지털 아카이브의 활용 방안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웹 퍼블리싱 소프트웨어 Omeka S를 활용하여 동료 작가의 작품과 기록을 직접 업로드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개인 단위에서도 활용 가능한 아카이브 시스템과 디지털 아카이브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본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다. 

     EJ 아카이브의 첫 번째 프로젝트 〈임다울 디지털 컬렉션〉(2026)은 「국제표준 기록물 기술규칙(ISAD(G))」,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아트아카이브 AA_M3_분류·기술 매뉴얼」과 「AA_R1_등록 메타데이터 작성 매뉴얼」, 국립현대미술관의 「국립현대미술관 수집 기록 분류·정리·기술 지침(버전 4.0)」을 참조하여 제작하였다. 또한 웹 퍼블리싱 과정에서 아카이브랩의 공개 매뉴얼과 오메카 포럼을 참고하였다. 이와 같은 지식 공유의 사례는 기록연구자 개인이 작가가 생산한 기록을 공유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운영진은 본 디지털 아카이브를 지식 공유에 대한 실천 사례로 제안하며, 점진적으로 미술계와 기록계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앞선 연구자들과 기관의 헌신에 감사드리며, 이와 같은 실천과 수행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기록이란 무엇인가?

 

기록학의 토대를 마련한 쉘렌버그(Theodore R. SCHELLENBERG, 1903~1970)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이 획득하는 1차 가치(행정적 가치, 재무적 가치, 법적 가치)와1) 기록 생산 이후 획득하는 2차 가치(역사적·문화적·연구적 가치를 포함한 증거적 가치와 정보적 가치)2) 를 제안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록은 다방면의 기능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접합하며 현재 우리의 삶과도 관계한다. 특히 사회 내 폭 넓은 예술 실천 과정에서 생산되는 예술 기록은 예술 행위에 대한 증거이자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닐뿐만 아니라 작가의 초기 활동과 작품 생산 과정, 창작 과정에 기여한 주변인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각 활동이 지닌 미적·연구적 가치를 담는다. 이러한 예술 기록은 기록연구자들의 기술(description) 실천과 연구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도달한다. 

     먼저 지금의 한국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기록과 그에 대한 연구가 우리에게 도달한 사례를 살펴보자. 미술사가인 아비 바르부르크(Aby Moritz WARBURG, 1866~1929)는 호피족의 춤 제의와 뱀 의식(Schlangenritual)에 대한 현장 연구에서 출발하여 〈모키족의 모래 그림〉(1891)3)의  뱀 형상, 〈춤추는 다이나데스〉(1 B.C)의 마이나데스(Maenades)4)가 두른 뱀, 〈라오콘〉(A.D 27~A.D 68)의 신벌(神罰)을 집행하는 뱀, 〈청동 뱀과 모세〉(1761)의 구리 뱀, 뱀과 번개의 공포를 잊은 미국인의 사진(1896) 등을 그가 수집한 기록과 함께 나열한다.5) 서로 다른 시대의 이미지는 그의 연구 속에서 하나의 도상적 계열로 수집·배열되며 주술과 종교의 숭배에 대한 위상, 그에 따른 성질의 간극을 초월하는 (뱀-)이미지의 세계를 제안한다. 그의 연구는 전시 Atlas: How to Carry the World on One’s Back?(2010), 《이미지 인류학,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Image Anthropolgy, Mnemosyne Atlas》(2020), 그리고 그의 도서 분류 체계를 참조한 《좋은 이웃 The Good Neighbour》(2023)을 통해 우리의 시간에 닿는다.

     다음으로 이 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록 연구의 사례를 살펴보자. 리움미술관 아카이브 연구 프로그램 《아카이브 이후: 이구열의 기록들》(2026. 04. 10.-11.)은 한국 최초의 미술 기자라고도 불리는 이구열의 컬렉션을 통해 기록물에 담긴 연구의 지평을 살핀다. 발제자 박소현은 이구열이 남긴 기록물(국방부 종군화가단 견장 기록 카드, 《미술전람회 제1회 北鎭戰(북진전)》 팸플릿 등)과 그가 생산한 문서를 바탕으로 당시의 문화정치 활동과 고희동이 창설한 조선미술협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6) 김해리는 《월남화가 작품전》의 템플릿을 통해 냉전기 문화정치 상황과 맞물려 형성된 월남미술인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7) 두 연구자 외에도 윤혜준, 권행가, 김계원, 현시원 등은 이구열의 기록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그곳에서 생성된 기록물의 풍경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작가와 함께 성장한 예술공간에서 생성한 활동과 기록을 살펴보자. 이는 창작 환경이 지속되기 위한 토대와 그 실천의 역사를 담고 있다. 2016년 9월 인천 개항장 임시 프로젝트로 시작한 임시공간은 전시뿐만 아니라 〈人千始美述觀인천시립미술관〉(2017),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7〉(2017), 〈디지털 아카이빙 툴킷 워크숍〉(2020), 『人千美述인천미술 : 공간의 공간』제작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지속에 대한 사유를 공유한다. 1999년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는 자체 공모 제도와 기금 마련 전시를 통해 작가가 창작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왔다. 2025년 설립된 옷과책은 지속 가능한 출판과 옷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며 창작자가 머물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위와 같은 활동은 공간별 홈페이지에 펼쳐 놓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공유된다. 




 

왜 디지털 아카이브인가?

 

기록학자 이영남의 “개인과 마을의 문화적 토양을 풀무질하는 곳으로 일종의 ‘복합문화공간’ 또는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er)’”로서의 마을 아르페(Community Archpe)8)에 대한 논의는 1999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지자체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천시립기록원·서울기록원·증평기록관 등의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설립된 이후, 성미산마을아카이브, 느티나무도서관9), 둔촌주공아파트 아카이브우토로 아카이브와 같은 지역·공동체 기반 민간 아카이브의 사례가 등장하면서 실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의 토대 위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꿈을 꿀 것이며, 그 꿈을 위해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보존할 가치를 지닌 비현용 기록물 또는 이를 관리하는 기관을 의미하는 아카이브10) 중에서도, 미술 작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록물을 뜻하는 아트 아카이브11)는 20여 개의 국내 미술 기관에서 구축되어 있다. 다만 디지털 아카이브는 아르코예술기록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백남준아트센터 등 일부 대형 기관에만 구현되어 있으며, 이들 또한 간단한 검색 기구 외에는 이용자가 아카이브 자원을 활용하도록 지원하지 않는다.12) 또한 기관 외 개인이 자신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하거나 지원하는 사례 역시 드물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기록의 보존과 활용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물리적 환경 속에서 우리의 모든 기록을 원본 그대로 보존할 수 없다면 디지털 환경에서 기록물에 대한 데이터를 공유해보자. 각자의 클라우드에 있는 폴더를 웹사이트로 옮겨 분류체계를 설정하고 제목, 생산일자, 기술계층, 기록 유형을 정리하여 기록물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산자명과 출처를 통해 기록의 맥락을 추적하며, 기록물의 내용과 정리체계를 공유하여 기록이 생성된 상세한 배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생산자, 생성 일자, 관련 자료 등의 항목을 시스템과 연동시킨다면 기록연구자가 생성한 분류 체계 외에도 기록과 생산자가 형성하는 다양한 관계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13) 더 나아가 리서치 가이드와 검색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낯선 방문자가 탐방할 기록의 세계에 대한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연구자와 생산자가 협력하여 펼쳐놓은 기록 속에서 서로의 환경과 동료를 관측하고 외부의 방문객을 초대할 토양을 마련해보자. 모든 것을 보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직시하되,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신과 이웃의 생산물, 생산 방식을 공유하고 그렇게 형성된 마을 간의 교류가 이어진다면, 이는 향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본 사이트가 공유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는 완결된 결과물로 고정되기보다 생산자와 그 현장과의 직접적인 교류 속에서 변화한다. 이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업무 기록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술 참여자들의 협력을 통해 생산되는 예술 기록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디지털 환경 안에서의 전략이기도 하다. 생산자의 지속적인 활동과 함께 변화하는 기록물을 통해 각각의 과거와 미래가 순환하는 공동체를 기대한다. 

     예술 기록을 끊임없이 선별하고 분류하는 과정 속에서 분리된 서로의 세계를 이어보고자 한다. 모두가 하나의 체계 속에 수렴되는 마을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과 관계하며 서로의 체계를 살피고 왕래하는 환경을 꿈꾼다.14) 기록연구자와 예술 생산자의 협업으로 구축한 아카이브가 이러한 기록 실천의 사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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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학용어플랫폼의 용어 ‘1차 가치(primary value)’에 대한 정의 참조.

2) 기록학용어플랫폼의 용어 ‘2차 가치(secondary value)’에 대한 정의 참조.

3) 아비 바르부르크는 ‘호피Hopi’를 과거 스페인식 표기 명칭 ‘ moqui’로 사용하여 지칭하였다. 아비 바르부르크, 『뱀 의식 -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김남시 옮김, 2018)의 25쪽 각주 참조. 

4) 디오니소스의 여성 추종자들을 지칭하는 말.

5) 아비 바르부르크, 『뱀 의식 -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이미지들』, 김남시 옮김, 읻다, 2018, 129-148쪽 참조. 

6)  박소현(2026), 「’이면’의 미술사와 ‘6.25 전쟁: 이구열의 화단사(畫壇史)와 고희동이라는 문제의 기원」에서 발췌.

7) 김해리(2026), 「월남미술인의 탄생: 월남미술인 전시와 냉전기 문화정치」에서 발췌.

8) 이영남(2008),「‘마을아르페’(Community Archpe) 시론 - 마을 차원의 “책, 기록, 역사 그리고 치유와 창업의 커뮤니티”를 위한 제안 -」참조.

9) 느티나무도서관은 2000년 설립되어, 현재는 용인시 수지구에 자리잡은 사립공공도서관이다. 세월호, 좋은 삶을 위한 정치경제, 시민의 탄생, 놀이하는 인간 등과 같이 사회에서 논의되는 주제어를 설정하여 도서를 분류하기도 한다. 2012년에는 이영남 교수와 ‘도서관을 거점으로 하는 마을아카이브’ 강좌를 열거나 기록관리의 기초적인 언어부터 파일의 기술서 내용에 대한 지식 공유 차원으로 ‘느티나무 아카이빙 워크숍’을 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최진선의 「민간 아카이브의 구축과 관리: 느티나무도서관의 사례」(2020)를 참조하라.

10) SAA의 아카이브 용어사전 참조.

11) 이혜린(2024). 현대미술에서의 아카이브 담론과 '아카이브 아트'의 재고찰. 한국기록관리학회지, 24(1), 32.

12) 김지아(2022). 예술기록에 관한 분류·기술 사례 연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를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74, 82-83.

13) 「영구기록물 기술규칙(Archival Description Rules) 2.0」 5쪽의 기술영역 및 기술요소 참조.

14) 서로 다른 환경에 자리한 존재들이 서로의 세계를 살피고 왕래하는 풍경은, 미술관과 종교기관 사이를 떠돌던 필자 본인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분위기》에서 《범퍼! BUMP!》로, 그리고 《밤나무-도깨비-분재》로」(2024) (1)~(3)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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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진

예술 기록과 아카이브를 연구하고 다루는 기록학계에 몸담고 있다. 예술 생산과 기록을 오가며 끊임없이 활성화하는 아카이브 구축을 목표로 기록학 석사 과정을 이수 중이며, 기획과 번역, 제작 등 다양한 예술 생산 활동을 겸하고 있다. 미술, 종교, 믿음, 제의 형식,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하는 구체적인 생산물 전반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신진작가 디지털 컬렉션을 구축하거나 아카이브 팀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등 실무에 집중하여 활동 중이다.

개인 프로젝트로 단체전 《HOW TO BETTER YOURSELVES》(2020)를 기획하였으며, 개인전 《트리-트리-트리》 (2021)를 개최하였다. 번역서 『가쿠레키리시탄』(2026)과 소설 『숭배의 가치』(2026)를 출간하였으며, 〈임다울 디지털 컬렉션〉(2026)을 구축하였다.